To explore new physics phenomena of low dimensional materials
with a special emphasis on two-dimensional layered structures
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8.11.15 12:14:57
정말 분주한 한 주였다. 실험실 사람들과는 이야기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한 주, 몸이 힘들다고 느낀 한 주, 감기가 낫지 않아 약을 먹고 어제는 모처럼 푹 잔 하루였다. 오늘은 입시라고 학교 오는 것을 제한하고 있으니 혼자 있는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되어 행복하다.
어제 허박사의 실험실 운영에 대한 지적이 아침 일어나자마자 머릿속에 맴돈다. 최근 일본에서 돌아온 후, 느슨했던 실험실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실험실 시간, 그리고 실험실 분산으로 인해 학생들 소재 파악의 어려움 등으로 새로 실시한 일종의 소재 파악표등은 우리 실험실 자율성에 저해되는 요소들이라는 것이다. 좋은 지적이다. 사실 실험실 생활을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것이 특별히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생활이 규칙적이지 않은 사람 즉 밤에 일하는데 적응이 된 사람들은 시간을 정해놓고 일하는 것이 어려울지 모른다. 이 경우는 이미 그룹 편지에 언급한 것처럼 그냥 평소처럼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런 패턴을 유지하면서 연구결과가 잘 나오지 않으면 무엇인가 다른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구는 물론 결국은 혼자하는 것이지만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데에는 많은 효율적인 방법들이 있다. 자기가 선택한 방법이 효율적이지 않는 것을 깨달으면 다른 방법을 써 보아야한다. 예를 들어 밤에 혼자 일하는 경우 진전이 없으면 규칙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토의를 통해 생각의 오류를 수정해 가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열심히 실험은 하는데 결과가 성공적이지 않으면 역시 실험실에 들어가기 보다는 책상에 앉아 데이터를 분석하고 필요한 자료를 찾아가며 토의를 통해 자기 오류를 찾아가야 할 것이다. 몇 년이 지나도 논문하나 쓰지 못하면 대개의 경우 자기 운영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과감히 자기의 생활패턴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물론 몇 십년을 인류의 숙원인 문제를 두고 씨름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대개 문제가 있다고 보면 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지금 실험실에서 제시한 새로운 강압적인(??) 방법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허박사가 지적한 것처럼 자기 의지를 갖고 연구에 임하는 사람들도 이런 실험실 변화에 부담을 느끼면 이 제도는 다시 제고되어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는 현재 실험실 운영방법이다. 지금은 사실상 점조직이 되어있다. 비록 구조적으로는 주제별로 구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모두 나하고 일대일의 대화를 통해 문제를 도출하고 있다. 사실 이제까지 우리는 이 방법도 써보고 또 연구원을 중간에 두고 그룹별로 운영해 본 경험도 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사실 교수와 직접 대화하고 문제를 파악하고 연구원과도 상의하여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지금의 상태를 선호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문제점은 학생 수가 너무 많아 내가 일이 밀리는 경우 다같이 일이 늦어진다. 또 올해처럼 내가 안식년이다 보니 이 문제가 더욱 커지는 것 같다. 이런 경우 대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학생들의 경우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소외되기 쉽다. 두 방법을 절충하라는 허박사의 충고는 타당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연구원들의 commitment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현재 자기들이 하는 일의 양보다 더 많은 부하가 걸리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이 준비하고 또 자기 시간도 희생해야 한다. 현재 우리 실험실에서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려운 문제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교수와 학생 혹은 교수와 연구원간의 관계이다. 흔히 교수를 보스라 부르기도 하지만 좋은 의미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스몰리 그룹에서 스몰리를 general (장군)으로 애칭하기도 했다. 행정상으로 보면 내가 실험실 책임자이니 그렇게 부를 법도 하다. 학생들이 처음 실험실에 오면 교수가 갖는 중압감 때문에 같이 토의하기를 어려워한다. 그래서 젊을 때는 교수라 불리우는 것을 싫어했고 선생이라는 호칭을 쓰게 했다. 이제는 그렇게 고치게 하는 것도 일이어서 그냥 신경쓰지 않지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나이를 먹어서인지 학생들이 더 어려워하는 것 같다. 그러나 연구에 있어서는 이런 관계는 치명적이다. 자유로운 토론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교수가 갖고 있는 선험지식의 양에 압도되어 자신이 없어 이런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연구의 주제가 주어지고 실제 실험이 시작되면 정작 그 분야에 대해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연구자 당사자이다. 그래서 교수와 학생이 아닌 같은 동료자로서 서로 토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연구의 효율을 올리게 된다. 물론 교수의 연구 분야에 대한 선험지식이 연구 전개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창의적인 생각을 누를만큼 권위적으로 표현되어서는 안된다. 교수의 역할은 어떻게 보면 학생의 창의적인 생각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그 교수는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분위기를 갖는 실험실을 만드는 것이 내 의무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난 내 실험실 색깔이 어느 색깔일까를 생각해본다. 키워드로 보면 아무래도 자율성이 첫 번째일 것이다. 자율성의 전제는 높은 동기부여이다. 어느 일도 그렇지만 연구란 자기와의 싸움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확실한 자기 동기부여 없이는 이 어려운(??) 일이 가능하지 않다. 싸움 중 가장 힘든 싸움이 자기와의 싸움이다. 자기한테는 관대해기 쉬우니까 언제든지 게으름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헤이 해진다는 이야기는 자기동기부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자기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일종의 자기 성찰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내 경험으론 혼자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혼자 침묵의 시간을 버텨낼 수 있고 그 시간을 자기에 대해 고민할 수 있으면 답이 나올 것이다. 사실 현대문명의 모든 이득이 때론 이 경우 독이 될 수 있다. 핸드폰은 우리를 생각하게 놔 두질 않는다. 컴퓨터, TV 모두 이를 위해서는 해가 되는 요소들이다. 가끔은 정말로 혼자 있어봐야 한다. 그래서 어둠이 주는 메시지, 나무가 주는 메시지, 사물이 주는 메시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 메시지는 다양성이다. 다양성은 곧 창의성으로 연결된다. 이를 위해 다양한 전공자, 다양한 문화, 다양한 나라, 남녀혼합비율등 많은 것을 고려한다. 하지만 이것도 위의 자율성과 만나야 제대로 된 새로운 생각들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성실함 없이는 그 어느 것도 이룰 수 없다. 이 자율성, 다양성, 성실성, 이 세 가지가 조화된 우리 실험실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나만이 아닌 모두의 몫으로 모두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이번 허박사의 충고는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번 중국 생활이 또 나를 많이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