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explore new physics phenomena of low dimensional materials
with a special emphasis on two-dimensional layered structures
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8.10.24 09:10:36
일본에 온지 벌써 일주일이 되어 간다. 출장 온다 하면서도 모든 중요한 것을 남겨놓고 정신없이 오다보니 여기서도 정신이 없었다. 발표준비도 없이 그냥 왔고 IEEE 학회 패널리스트 준비도 전혀 없이 그냥 왔다. 어제서야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통보받고 정신없이 준비하여 발표했다. 돌아오는 길에 또 기차를 반대방향으로 타고 가서 공짜로 여행만 더하게 되었다. 오늘은 모처럼 나고야 대학에 있으려니 또 여기 학생들과 토의가 잡혀있어 종일 우리 학생들과도 밀린 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전철 시간 때문에 집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일이 밀려 있다.
여행은 이동, 음식 적응, 잠 적응, 새로운 사람과 그 곳에 맞는 생활습관에 적응하는 등 여러 가지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또 여행중 밀려드는 외로움은 늘 사람을 그리움으로 때로는 고독으로 몰아가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람을 생각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지난 7월 프랑스에서 돌아온 이후로 주위에서 일어난 많은 상황들은 나를 실망시키고 지치게 만들더니 급기야 그런 일들이 겹쳐서 결국은 나를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절망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passion이 없어져 버린 사람이란 표현이 맞을까... 끊임없는 일들, 연구비, 논문등 제대로 해결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한국이란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고 그리고 갈 수도 있다는 용기를 가지기도 했다. 결국은 버리는 연습에 익숙해진 것이다. 떠나는 것은 잃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가진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쉬운 일인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그리 쉽지 않았다. 어느새 나도 가진 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서는 가진 것을 버려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 와서 있는 잠깐 동안 바쁜 중에도 많은 생각을 했다. 전철을 이용하고 집에 와서 덩그런 호텔에 나 밖에 없으니 말할 대상도 없다. 결국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스스로에게 대답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생각하는 힘이 생기니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이 하나씩 실타래 풀리듯이 풀린다. 스스로에게 내는 짜증은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 절망은 문제해결을 아주 어렵게 꼬아간다는 것, 그리고 연구를 앞으로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연구비는 어떻게 충당해야 할지, 실험실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등, 하나씩 생각할 수 있었다.
정말 희망과 절망은 종이 한 장 차이일까? 희망과 절망 사이에는 건너기 힘든 강이 있을까? 나는 이 나이에도 살면서 희망과 절망 사이를 수도 없이 오간다. 어떤 때는 그 사이에 있는 강이 너무 넓어 보여 도저히 건너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나놓고 보면 그냥 쉽게 건너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어려워 보인다. 시험에 떨어진 젊은 날의 절망감, 실연을 당했을 때의 고통, 등을 돌리는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 모두 우리를 실망시키는 것들이다. 실험이 잘되지 않는 실험실 사람들의 절망감도 그렇게 힘든 것일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회의감,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러나 사실 희망과 절망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절망이 없으면 희망도 없다. 절망이 깊으면 깊을수록 희망도 강렬해진다. 절망하면서 시련을 극복해가는 동안 어느새 자기도 강해져있다. 이제 절망하는 것에 대한 버퍼도 커진 것 같다. 논문이 제대로 출간이 되지 않아도 그렇게 실망하지 않는다. 대학원생들이 실망을 시켜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다. 옛날 같으면 대학원생들이 내가 없으면 실험실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요령을 부리면 연구를 할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몰아 부쳤지만 이제는 그런 사람을 봐도 언젠가 달라지겠지 하고 기다린다. 절망을 통해 인내를 쌓는다. 절망이 폭풍우처럼 몰아칠때면 절망감으로 숨을 쉴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숨을 고르고 반격할 기회를 찾는 인내심이 생기는 것이다. 사실 절망과 희망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은 아주 좋은 친구인 것이다. 항상 나를 유혹한다.
여기 생활은 나를 많이 차분하게 만든다. 일본은 우리가 생각하는 나라보다 훨씬 더 배울 점이 많은 나라인 것 같다. 이제는 일본의 나또가 맛있어졌다. 그 냄새가 역겹지 않고 입 안에 감기는 맛이 있다. 긴장에 싸여 준비한 일들이 모두 끝이 나서 그런지 이제 두통도 사라졌다. 이제 내가 어디에 있든지 절망에 더 커진 버퍼를 가지고 잘 버틸 것이다. 그렇게 버티다보면 언젠가 좋은 일들이 생길 것이다. 연구비 문제도 이제까지 잘해왔는데 앞으로 못할까. 논문도 이제까지 잘 버텨왔는데 왜 못할까. 뭔가 새로운 일을 늘 추구하고 내가 속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왜 없겠는가.
그렇다. 절망에 졌다 싶으면 난 여행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실험실 일 때문에 못 간다? 이 부분은 내가 언제든지 도와 줄 수 있다. SOS를 치면 된다. 모두 절망에 잡히지 않도록 스스로를 잘 쳐다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