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explore new physics phenomena of low dimensional materials
with a special emphasis on two-dimensional layered structures
이번 독일의 출장은 일본에 이어 연속이다, 공항에서 대기 시간이 애매해 결국 아내한테 속옷을 가져오라고 해서 공항에서 바꿔치기했다. 두 학회를 연결하고 KBS팀과 스케줄을 조절하다보니 생겨난 해프닝이다. 그래도 몸만 버텨준다면야 문제가 되지 않을 것..
비행기에서 한참을 자고 나니 여전히 중간이다.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아무 생각없이 스쿼트를 하는 순간 찍 소리가 나면서 바지 엉덩이가 찟겨졌다. 당혹스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다른 바지는 이미 부쳐버린 가방에 있다. 승무원에게 이야기했더니 방법이 있단다. 조금있다 일등석에서 사용하는 트리닝을 가져왔다. 바지를 트리닝으로 바꿔입고 공항을 이동한다고 하니 어색할 것 같았다. 암스테르담에서 내려 브레멘으로 바꿔 타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승무원이 상의를 허리에 두르면 될 것 같다고 제안했다. 좋은 생각이었다. 센스가 있는 승무원 덕분에 그렇게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역기 대한항공이다. 이번 여행도 시작부터 스릴이 넘친다.
브레멘은 잘 갔다. 전에는 학교내 호텔에 머물렀는데 이번엔 시내 한 가운데다. 전에는 몰랐던 시가의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오래된 도시인줄 몰랐다. 600년 이상된 교회 건물이 있고 오랜 된 건물이 고스란히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독일도 우리나라처럼 많은 도시 혹은 유적들이 전쟁에서 없어졌다. 말 개 고양이 닭 넷이 포개져있는 동화에 나오는 그림도 여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벼룩시장이 시내 한가운데 매일 열린다. 다른 도시완 다른 점이다. 강을 끼고 있는 도시는 굉장히 한가롭다. 사람도 많지 않고 한가하다. 딱 맘에 든다.
학회는 생각보다 좋은 내용의 강연이 많았다. 초고속 캐리어 동력학에 관한 강점을 가진 독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부분이 우리가 아직도 많이 배워야 할 부분이다. 우리 연구에 관해서도 많은 의견 교환이 있었다. MEG 우리 데이터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니 모호했던 부분들이 많이 정리되었다. 여기 이론 친구들과 상의해 이론으로 몇 가지 모호한 개념들을 시험하기로 한 것도 좋은 소득이었다. 내 강연은 생각한 것보다 잘하지 못한 것 같다. 강연 내용을 합성과 물성에 균형을 맞추어야 했는데 너무 합성에 시간을 다 써 버렸다. 그래도 다른 멤버들이 모두 잘 발표했으니 우리 팀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소개한 셈이다. 우리 시료를 사용하고 있는 덴마크의 호프만도 학회에 참석해 만난 것도 반가웠다. 브레멘의 젊은 연구팀과의 교류는 유쾌하다. 항상 배운다. 학회는 이래서 좋다. 밤에는 맥주하면서 문화를 교류하고 낮에는 공부하고.. 무엇이 이것보다 좋을까...
그런데 날씨 변화가 아주 심하다. 해가 날 때는 따뜻한데 구름이 끼면 온도가 확 내려간다. 밖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해가 들어가면 추웠다. 두꺼운 옷을 전혀 준비하지 못한 잘못으로 감기가 걸렸다. 밤에 목이 아프고 발에 쥐가 나는 것을 보면 몸살이 겹쳤다. 늘 가방에 넣고 다니던 타이레놀도 찾아보니 없다. 떨어진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낭패다. KAL에서 주었던 상의를 입고 잔 덕에 목이 조금 보호되었던지 아침에 목의 통증이 덜하다.
마지막 날까지 그래도 잘 버텼지만 스튜트가르트로 옮겨오면서 상황이 더 나빠졌다. 토요일 날 여기 한국인 연구원들과 만나기로 해 나가는데 목의 통증이 다시 오고 몸에서 열이 났다. 결국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여기 정박사가 한국에서 가져온 비상 조제약이 있다고 해서 먹었더니 몸이 좀 살아났다. 그러나 안심이 안되어 결국 한국에서 오는 배PD한테 부탁해 목감기 코감기약을 가져오라 부탁했다. 결국 토요일, 일요일을 밖에 나가지 않고 호텔에서 잠만 잤다. 몸이 못 버티니 생각이 집중이 안된다. 끝내야 될 일이 많은데..... 일요일 겨우 준석이 밀린 논문 수정본과 다른 몇 가지 일을 끝내고 또 잠을 잤다. 다른 제출 논문은 읽어보지도 못했다. 외국에 나와 몸이 아프면 고생이다. 마음도 처진다.
월요일 아침 배PD 팀은 도로 교통체증에 밀려 한 시간도 늦게 여기에 도착했다.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독일인들인데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미리 연락을 했다니 안심이었다. 생각보다 스테판은 친절하고 인내심이 강했다. 친절하게 랩을 소개해주었고 반복되는 촬영에도 잘 협조해주었다. 참 다행스러웠다. 그러나 오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다른 스케줄이 있어 결국 다음날 더 촬영하기로 약속하고 나왔다. 구내 식당에서 점심하고 오후에는 한국인 과학자들과의 대담이 있었다.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다. 5명이지만 유럽에서 오랜 연구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들, 또 얼마 안 되는 신참들 아주 다양했다. 오래된 친구들은 안정된 자리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젊은 친구들은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우수한 연구환경을 언급했다. 여기의 좋은 연구환경과 자유롭게 질문하는 점이 한국과 가장 다른 점이라고 했다. 자유로운 연구 문화의 문제는 역시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다. 이것은 단지 연구자들만의 숙제가 아니고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다. 나이가 주는 권위, 질문을 억제하는 교육 풍토... 어디서부터 풀어야할까... 과거 30년동안 내가 고민하고 풀려고 했던 문제다. 지금 우리가 만든 연구소가 그런 공간일 수 있을까. 교수실을 트인 공간으로 만들고, 학생들과 사무실을 오픈 공간으로 만들고 방문을 열면 학생들을 보고 실험실을 오픈 공간, 이런 하드웨어로 풀 수 있을까. 이런 단순한 노력들로는 이런 오랜 우리 문화의 벽을 깨기는 힘들 것이다. 공동 연구토의, BB 세미나, 박사모임, brainstorming meeting, 학생모임 이런 노력들 하나하나 모두 필요한 우리의 노력이지만 여전히 문제점을 찾아 보완해야 한다. 쉽지 않은 우리의 숙제다. 하지만 대학에서 이런 것을 보이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다. 우리가 시작이다. 역시 열쇠는 결자해지라고 가진 자 즉 교수가 자기 권위, 권리를 놓아야 한다. 그것이 그리 쉬울까. 가진 것을 놓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그 권위 속에서 보호받으려는 유혹을 떨쳐 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아니 대부분의 교수들은 자기가 그런 유혹에 빠진 것조차 모를 것이다. 그것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면 절대 이것을 문제점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수가 학생들의 질문에 자유로우려면 그만큼 준비를 많이 해야하고 아는 것에 솔직해야한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문제를 같이 해결하려는 자세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이상한 질문을 하는 학생들에 대해 눈치를 주는 것도 피해야 한다. 어리석어 보이는 질문에 대해 화를 내서도 안된다. 질문하는 학생에게 화를 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학생도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것을 알 때가 있을테니... 아니 그것보다 한번의 질책이 다음 질문을 막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본인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 당연하다. 아는 척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가르치려는 자세를 버리는 것... 지금처럼 정보의 홍수 속에서는 배우려고 하면 누구든 상대적으로 숩게 배울 수 있다. 다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은 그런 정보속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권위를 잃는 대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측면에서는 이 길이 나을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다음 날은 전날 다 끝내지 못한 스테판과의 인터뷰를 계속했다. 스테판의 협조로 아주 쉽게 진행되었다. 난 촬영중간에 나와 폰 클리칭교수와의 약속으로 11시에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4년전보다 약간 배가 더 나온 클리칭 교수는 아주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힘이 넘치는 것은 여전하시다. 여행에서 바로 돌아오면 밀린 일하느라 바쁘지만 아예 포기하기로 한 것 같다. 책상 위는 밀린 서류로 꽉 차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냥 나하고만 대화했다. 한 시간이 금방 흘렀다. 옆 방의 비서가 놀라 기웃거린다. 갑자기 왠 풍성한 웃음이냐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평소에 잘 웃지 않는 독일인들이니 놀랄 만도 하다. 클리칭 교수님이 오늘만은 예외인가보다. 12시가 지나 구내 식당에 같이 가서 식사했다. 음식값도 본인이 낸 단다. 식사도중 멀리서 클라우스 컨 교수가 어슬렁거리자 소리내어 불렀다. 컨교수는 나하고 전에 안면이 있는 친구로 여기 7명 소장중의 하나다. 나중에 들르려고 했지만 미리 만난 셈이다. 늘 그렇듯 뚱한 얼굴이다. 일년전보다 더 살이 쪘다. 내가 자기한테 직접 먼저 가지 않아서 약간은 기분 나빴을 것이다. 그래도 오후에 시간이 비니 찾아오라고 한다.
두시부터 클리칭 교수와의 인터뷰는 본인의 왕성한 에너지로 아주 순조롭게 끝났다. 본 클리칭 상수가 적혀진 새로 나온 표를 자랑하고 본인 수상한 노벨상 (가짜) 메달을 보여주며 아주 신나셨다. 그러나 질문 내용하나하나 정성껏 대답해주셨다.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는 연구환경을 만들어주고 연구자에게 연구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노벨상을 50명 이상 수상한 비결이라고 했다. 연구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 우리처럼 연구가 종료된 후 연구자를 논문의 숫자로 평가하고 성공 실패를 가르는 일은 여기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연구의 실패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이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배운다. 연구보고서에 그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면 충분한 것이다. 스테판도 연구의 실패라는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질문서를 잘못 작성한 셈이다. 아니 우리의 연구 문화가 여기의 연구 문화와 그렇게 다른 것이다. 그리고 독일인들의 과학에 대한 인식을 언급했다. 독일인은 과학이라는 문화를 잘 이해한다. 스스로 자원이 없으니 물건을 만들어 수출해야 산다고 믿고 있고 그 근간이 사람이 제일 중요하니 사람을 키워야하고 기초과학이 결국은 나라를 강하게 한다고 믿고 있단다. 이런 생각을 우리도 할 수 있다면... 정부예산은 어떤 정부가 와도 정해진대로 투자한다고 했다. 매년 연구비 예산을 깍으려는 우리 정부의 태도와는 너무 상반되는 태도다. 우리에게는 꿈처럼 들린다. 우수한 학생들이 과학을 선택하지 않는 것에 대한 한국의 현실에 답은 간단했다. 적어도 평균이상의 실력 소유자라면 누구든 과학을 즐기면서 일자리가 보장된다는 것이었다. 일자리가 보장이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젊은 과학자들에게 사회가 모든 모두에게 일자리는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기야 그것은 어느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독일사회는 우리와 많이 다르다. 여기는 의사가 그리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 그리고 어렸을 때 적성검사를 통해 본인의 미래가 결정된다. 대학대신 직업학교를 선택하도록 강요받는다. 그러나 엔지니어도 대우를 받기 때문에 이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회보장이 잘되어 있는 나라다. 우리 사회는 이런 보장이 없으니 어느 부모든 자식을 직업학교에 보내라하면 심리적으로 반발할 수 밖에 없다.
인터뷰가 끝나고 정밀 실험실에 가서 비데오를 찍었다. 크기가 얼마나 클까. 모든 건물이 무진동실이다. 그 안에는 다시 8개(?)의 박스가 들어있고 각 박스는 다시 무진동, 방음, 전자기차폐가 더해지고 그 안에 장비가 놓여 있다. 각 박스 안에는 10 mK, 1 mK 극저온, 17테슬라, 21테슬라의 전기수송측정장치가 놓여있다. 우리도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도대체 우리와 비교가 안된다. 이런 인프라를 갖추는 생각을 컨 교수가 시작했다. 이런 생각도 생각이지만 이것을 허락해주는 정부도 대단하다. 기반시설 구축비를 과감히 투자하는 것이다. 노벨상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기반시설을 나름대로 잘 갖추었다고 자부하는 나의 자존심이 여기서 무너졌다. 핼륨 액화장치도 빨리 설치하자. 그 다음날 찾아간 공작실은 나의 상상을 불허했다. 우선 200여평의 공간에 다양한 milling machine이 배치되어 있다. 과거형에서 최근 형까지... 엔지니어는 18명이 근무하고 있다. 부 책임자가 경력이 25년이다. 한쪽에서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와서 실습하고 있었다. 장비값만도 200억유로다. 보관되어 있는 재료만도 20억유로를 넘는다. 연구자가 구입하기 힘든 부품들을 여기에 제작을 의뢰하면 매니져와 상의하여 필요한 재료와 주문서를 작성하여 밖 책상에 놓으면 작업할 수 있는 엔지니어가 그 주문서를 받고 다시 연구자와 상의하여 도면을 작성하고 최종 제품을 만들어 낸다. 때로는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이것이 도대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인프라인가. 한국 대학에서 이런 공작실이 사라진 지 오래다. 내가 대학 때만해도 소규모로 있었는데... 이런 규모의 기반시설을 개깅니 갖추기는 힘들다. 대신 대학본부 기기실에서 갖추고 운영하는 것은 어떨까. 엔지니어도 고용하고 지금 기기실처럼 사용료를 받고 운영하면 된다. 이 공작실 이외에도 전자기기실, 유리세공실, 화학실등이 갖추어져 있다. 엔지니어도 모두 100여명이 된단다. 우리와는 기본이 다르다. 어떻게 이런 기반을 구축할 수 있을까... 갈 길이 멀다. 그러나 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