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explore new physics phenomena of low dimensional materials
with a special emphasis on two-dimensional layered structures
실험실에만 있다가 밖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면 이제 의례껏 미래를 걱정하게 된다. 나이가 든 탓일까? 아니면 경제가 암울한 탓일까? 아니면 우리가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때문일까? 모처럼 기차를 타고 전주를 다녀오니 많은 생각이 든다. 그 사이에 봄이 완연해졌다. 곳곳에 벗꽃이 흐느러졌다. 희한하게 올해는 꽃의 피는 순서가 없다. 의례껏 동백이 피고 목련이 이어지고 노란 개나리가 늘어질 때면 벚꽃이 만발인데 올해는 웬일인지 모든 꽃이 한꺼번에 핀다. 날씨의 변덕에 꽃들도 더 이상 적응이 되지 않는가 보다. 하기야 정치가들이 하도 개판치고 나라를 망가뜨려도 이제 이런 것들이 우리 모두에게 무디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것일까. 가마솥에 들어간 개구리도 서서히 달구는 솥에서는 죽어가는 것을 잘 모르는 것처럼 우리도 그런 세상에 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번만이라도 내 주위를 보면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적어도 교수들한테는 이런 것들이 피부로 다가온다. 졸업한 학생이 취업을 못하고 있으면 바로 경제가 나쁘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문제는 이런 문제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닐 것이라는 예측이다. 아니 더욱 절망적인 것은 적어도 지금보다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아예 없다는 것이다. 경제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이 일시적이라면 다만 참고 있으면 되지만 더 좋아질 기미가 없다는 것은 참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성장률 3% 이하, 개인국민소득 30,000 불 이하 정체, 중소기업 정체, 고령화, 국채 5000조,,,, MB 정부가 그렇게 나라를 말아 먹은 결과가 이제 이련 결과로 나타나는 것을 국민들이 잘 느끼지 못한다. 정치인이 나라를 망치는 일들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제 우리의 피부로 느껴지지만 더욱 절망적인 것은 아직도 누구도 해법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전후 세대인 우리가 그렇게 자랑스럽게 이루어놓은 경제성장이 결국 우리 다음 세대에 희망조차 주지 못하는 짧은 발전으로 끝나버린 지금 이 때 우리는 무엇을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야할까.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까. 저금 젊은이들은 방황하고 있다.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그들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직장조차 주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결혼도 할 수 없다. 아이도 낳기를 꺼려한다. 과연 우리 미래에 희망이란 것이 있을까. 어떻게 중국을 이길 수 있을까. 어떻게 이 난관을 이겨나갈 수 있을까. 너무 가까운 단기 처방에만 급급한 우리 모두의 탓이다. 왜 길게 보지 못한 것일까... 후회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도대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IBS 내에서조차 난 무엇을 추구할 수 있을까. 취업이 안 되고 밀려있는 학생들을 보며 난 무엇을 제시할 수 있을까. 우리 연구원들은 우리 앞에 닥쳐있는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있을까. 아니 얼마나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까. 아니 막연히 하다보면 어찌 되겠지.. 졸업하면 어찌 되겠지... 하고 느끼는 것일까. 이런 현실 앞에서 난 과연 과학을 즐기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말이 그들에게 얼마나 공허하게 들릴까. 이것이 어찌 개인의 문제일까.
지금 우리는 전쟁을 하고 있다. 총성없는 경제 전쟁... 그 사이에 우리가 있다. 그 전쟁터의 피해자인 것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퇴로없는 전쟁... 과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뒤지면 얻을 수 없는 경쟁... 이 전쟁터 속에서 난 무엇을 해야할까.
전쟁터에서는 다른 질문이 필요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어떻게라는 질문이 우리 모두에게 숙제이다. 난 감히 말하고 싶다. 지금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는 없다. 다만 처칠이 전쟁에서 국민에게 요구한 것처럼 우리에겐 살아남기 위해 땀이 필요하다. 우리가 전에 살아남기 위해 피땀흘린 것처럼 이제 우리에게 그런 피땀외엔 대안이 없다. 그렇게 흘린 땀의 댓가가 있을지 우린 아무도 모른다. 내가 즐기는 과학을 위해 적어도 지금은 땀 흘릴 때인 것이다. 난 내 연구원들, 학생들이 자랑스럽다. 아니 적어도 이들은 나를 이해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아직 내가 연구를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내 모든 사람들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할 것이다. 잘하고 못하고는 그 다음이다. 적어도 지금은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재고하고 나를 한계선까지 몰고 있는지 각자 확인해야 한다. 한계점에 이르지 못하면 그 다음으로 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젊을 때는 그래도 몸이 받쳐준다. 지금 나는 내 몸에 한계를 느끼지만 난 아직도 이 한계를 넘고 싶다. 아니 적어도 난 내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래서 나를 더욱 한계점으로 몰고 갈 것이다. 적어도 그래야 내 다음 세대들한테 떳떳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죽을 때 난 게으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