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explore new physics phenomena of low dimensional materials
with a special emphasis on two-dimensional layered structures
이번 주는 정신이 없었다. 월요일 화요일 외부 출장, 목요일 금요일 외부 세미나, 연구 리듬이 모두 깨어져 버렸다. 리듬을 잃지 않기 위해 아침에 30분씩 머신을 이용해 걷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그 어떤 일도 연구에 집중하지 못하면 의욕이 떨어지고 힘들어한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그저 피곤한 일이다. 그것을 아는 나인데도 제어가 안 되니 어려운 일이다. 이 나이에도 아직도 남 눈치 볼 일이 남아 있는 것이다. 아침에 나가 저녁에 돌아오면 머리가 가득이다. 두통이 떠나질 않는다. 잠도 잘 자질 못한다. 파김치가 되는 느낌은 무언가 하루가 내가 원하는 것들로 채워지지 않은 탓일 것이다. 연구소는 아직도 정리가 끝나지 않았다. 무엇인가 자꾸 미흡한 것이 보인다. 못 하나 박는 것, 연장 하나 치우는 것, 탱크 하나 고정하는 것, 미팅, 광고판, 옷장,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이 없다. 이것은 나의 태도의 문제이다. 모든 것이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려 주면 되는 것이다.... 왜 이리 조바심 낼까... 왜 사소한 것에 이리 신경이 쓰이는 것일까.... 이 나이에 아직도 마감일이 많다. 인생은 그냥 진행형 아닌가...
밀린 논문이 이제는 그래도 하나 남아 있다. 기를 쓰고 쓰는데도 항상 하나쯤 버티고 있다. 하기야 내 인생에서 그렇지 않은 날이 몇 날이나 될까... 그러나 시간이 있으면 있는 일을 체크해야하고 진행사항을 점검하고 기획하고 또 진행시켜야 한다는 강박감이 나를 편하게 놔주질 않는다. 요즈음은 학생들도 지쳐있을 것이다. 실험실에도 연구실에도 모두 텅 비어 있다. 아침에도 몇시에 나오는지 모두 불이 꺼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이런 때일수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렇게 나가면 몇 년 못 버티고 무너진다. 나가지 않는 원인을 파악하고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 이 상황을 극복할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아니 이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이것도 시간에 맡겨야 할까... 아직도 내게는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는 것이 나의 욕심일까...
그저께는 대구과기원에 세미나를 갔었다. 가기 싫은 걸음이었지만 오래 전 악속한 일이니 갈 수 밖에 없었다. KTX에 몸을 실으니 피곤해 눈부터 감긴다. 가는 동안 어느새 짙푸른 산들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산들은 이미 여름이 되어 있었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세월은 가고 있다.... 오늘은 화학연구원에서 세미나가 있어 또 아침 일찍 운전해 내려왔다. 커피를 먹고 버티니 일단은 버티어진다. 점심을 먹고 오후 토크 몇을 듣고 나니 혼자 기다리고 계시는 엄마가 생각난다. 여기서 저녁 먹고 가느니 그나마 시골에 가 엄마랑 식사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오후에는 일찍 회의장을 나왔다. 가면서 전화하니 엄마의 입이 벌어지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마을 회관에 계시는지 문이 잠겨 있다. 잠기나 마나다. 담벼락에 숨겨놓은 젓가락 하나로 쉽게 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혼자 방에 앉아 있으니 고즈넉하고 좋다. 마음이 편해진다. 창밖에 보이는 텃밭이 잘 정돈되어 있다. 아마도 자식들 시키지 않으려 미리 정리한 것이리라. 잠시 후 들어오시는 엄마는 벌써 입이 올라가 있다. 몸이 불편하시면서도 그냥 시골에 계시기를 원하는 엄마가 안쓰럽다. 치매기가 있으면서도 자식한테 짐이 되지 않으려고 하루도 빼지 않고 혼자서 운동하신다. 그러나 조금씩 나빠지는 엄마의 상태가 안타깝다. 젊어서 그리 고생하시고 이제는 치매증세까지 있으시니 인생이 공평해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어차피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 엄마의 벗이자 늘 옆에서 도와주시는 이쁜이 아줌마, 혹이네 엄마랑 갈비탕 집에 가서 갈비를 먹고 왔다. 갈비탕 한 그릇에 모두 행복하다. 나도 모처럼 편하게 뜨끈한 갈비탕 한 그릇에 행복함을 느낀다. 오는 길에 한방 자연닭 집에 들러 닭을 두 마리 샀다.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이런 닭은 어렸을 때 먹었지만 지금은 드물다. 아직도 시골에는 이런 닭이 있으니 신기하다. 그 닭을 사는 엄마의 마음에 손주들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이 있다. 초원이는 재수하느라 학원에 기숙하고 모처럼 휴가가 할머니 생일하고 겹쳐 시골에 오니 엄마의 마음이 들 떠 있다. 초원이는 말이 없지만 속이 깊다. 고등학교 때도 학교에서 말썽을 많이 부렸지만 할머니가 병원에 계실 때 혼자서 밤늦게 걸어서 병원에 들려 할머니를 볼 만큼 속 깊은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대학에 못 갔으니 할머니의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도 내색않고 그저 응원이다. 그게 할머니인 것이다.
온다하던 누이가 다음 날 온다더니 또 마음을 바뀌었다. 내가 일찍오니 마음을 바꾼 것이다. 엄마의 얼굴에 또 화색이 돈다. 만나면 싸우지만 싸우면서 엄마와 이야기하려는 누이의 마음이 또 고맙다. 누이만큼 엄마를 생각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아들은 그저 울타리다. 누이는 엄마를 위해 여러 가지 신경을 많이 쓴다. 딸이 있음이 엄마에게는 최고의 위안이다. 매형 누이 나 그리고 엄마가 모처럼 금요일날 저녁을 오붓하게 지냈다. 엄마 옆에 자는 것도 당연히 내 몫이다. 얼마만일까... 이렇게 자는 것도 아마도 마지막인지 모른다. 움직이실 때마다 엄마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아직 기억하시고 또 움직이시니 그저 고맙다.
다음 날이 되니 여동생이 조카 둘을 대령하고 들이닥쳤다. 12시간 아르바이트한 조카를 바로 끌고 내려왔다. 성격이 적극적인 여동생은 항상 속이 깊다. 통도 커서 엄마를 위한 큰 일을 도맡아 한다. 그 여동생도 이제 늙어 건강이 이리 저리 상했음에도 엄마를 위한 일에는 몸을 사리지 않는다. 젊었을 때 좋은 고등학교에 합격하고도 보내주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을 뒤로 하고 그럴려면 왜 날 낳았느냐고 항의하던 여동생이 이제는 엄마의 일이면 만사우선이다. 조카녀석도 몸이 피곤하련만 할머니 생일이라고 쉬지도 않고 내려왔다. 고맙고 기특한 녀석이다. 엄마의 경제적 여유가 없는 것을 알고 자기가 원하는 학과를 찾아 시골 학교에 입학하여 군소리없이 학교 다닌다. 늦동이라고 낳은 아들이 고등학교 때는 그렇게 투덜이더니 대학에 들어가니 철들어 버렸다. 마치 세상이 변한 것처럼 그렇게 변해 버렸다. 불가사의한 녀석이다.
오후 되니 두 남동생 식구들이 집합했다. 막내는 여전히 늦게 온다. 막내란 늘 그런 존재일까... 학원에 기숙하는 초원이가 나타나니 가족 모두가 웃음꽃이다. 그렇게 몸이 좋던 녀석이 홀쭉하게 변해왔으니 할머니가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누이가 몇 시간동안 끓인 삶은 닭으로 모두의 배를 채웠다. 초원이는 좋아하지 않는다면서도 할머니가 준비한 탓에 그래도 많이 먹었다. 닭 두 마리에 모두가 행복한 시간이었다. 저녁에는 모두 들녘으로 산책하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꽃을 피우니 정말로 가족이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새삼 느껴진다. 언제든지 와서 쉴 수 있는 곳. 무슨 이야기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 나를 꾸미지 않고 말해도 되는 삶들이 있는 곳.
다음 날 아침식사는 누이의 준비로 완전히 건강식단으로 꾸며졌다. 누이 옥상에서 기른 무우로 만든 물김치, 취나물, 뽕잎 나물, 매형친구가 주운 도토리로 만든 묵, 매형이 전날 잡은 우렁으로 우렁 무침, 된장국, 그리고 조기구이, 그야말로 고기없는 식탁이 되었다. 생일 날이라 끓인 미역국은 뒷전이다. 식사중 엊그제 미국에 공부하러 간 조카가 스카잎으로 모두하고 통화한다. 며칠이 되지 않았는데도 모두를 보고 싶어하는 것이 조금은 안타깝다. 해진이도 학교를 못가 진통을 겪고 있지만 이제는 모두가 그 아픔을 공유하고 해결하려 하고 있으니 또한 그만이다. 아직은 세상을 모르는 조카들이다. 조금은 물러 항상 아쉬움이 있는 녀석이지만 곧 강해질 것이다. 하기야 나도 어렸을 때는 누이가 그렇게 물러 어떻게 사냐고 늘 꾸지람을 들었다. 사람은 적응하기 위해 늘 진화한다. 나도 이렇게 변했으니 말이다. 식사 중 엄마의 기도가 절로 나온다. 그저 감사하다는 엄마의 기도가 마음에 닿는다. 감사하다는 말 이외에 무슨 말이 필요할까.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시는 하나님께 이 말 이외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런 시간이 어떻게 또 올지 모르지만 나를 있게 해준 나의 삶이 있는 곳이다. 엄마가 그저 건강하기를 바랄 뿐이다. 조금이라도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