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explore new physics phenomena of low dimensional materials
with a special emphasis on two-dimensional layered structures
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2.12.24 10:07:57
요즈음 입시철이다. 고3을 가진 부모는 노심초사한다. 자식이 어느 대학을 갈지 무슨 과를 선택할지 고민한다. 점수가 되지 않는 자식을 가진 사람은 자식을 꾸중하고 때로는 자신을 자책한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무엇 때문에 자기 자식이 다른 애보다 못할까. 이런 사람은 동료와 이야기하면서 자식 이야기만 나오면 기가 죽고 움츠러든다. 반면 좋은 대학에 다니는 자식을 가진 사람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마치 자기가 그 공을 다 얻은 것처럼…. 이런 이야기들은 여자들 사이에서는 더 심해진다. 마치 돈 잘 버는 남편을 가진 여자가 목에 더 힘주는 것처럼 좋은 대학에 다니는 자식을 가진 엄마는 그야말로 가관이다. 대리만족이다, 마치 스스로가 성공을 얻어낸 것처럼…
오늘 추운 일요일인데 할 일이 밀려 실험실에 나가 일하면서 막내동생과 통화를 했다. 서울에 내일 세미나가 있어 가족과 함께 와서 쉬고 있다고 한다. 모처럼 들리라고 했더니 바빠 들릴 수 없다고 한다. 한편으로 이해하지만 한편으로 서운하다. 조카들의 사춘기가 가족 모두를 힘들게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시골에 혼자 계셔도 자주 들리지 못한다. 둘째 동생도 상황이 비슷하다. 가까이 살지만 혼자 계신 엄마한테 자주 가질 못한다. 멀리 있다 핑계대고 못가는 나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아이들에게는 온갖 정성 쏟으면서 부모에게는 무관심이다. 하긴 그래서 내림 사랑일까. 전에 전주에 있을 때는 거의 주말마다 들려 부모님과 같이 식사하곤 했었다. 일요일이 힘들면 토요일에 잠깐이라도 들렀다. 그래서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할머니를 많이 좋아하고 할머니도 아이들 사랑이 극진하다. 얼마전 가족 여행 이야기하면서 엄마가 같이 가자고 했다가 마누라와 한판 한 적이 있다. 어쩌다 한번 가는 여행 분위기 망치고 싶지 않다고 헀다. 그래 엄마와 같이 가면 가족에 집중할 수 없으니까… 하기야 모처럼 가는 여행이니 그럴 만도 하지만 왜 그리 가슴이 허전할까… 가족이 무엇일까… 나에게 가족은 누구일까…
아무리 내림사랑이라 해도 요즈음 우리 부모들이 아이를 아무래도 잘못 키우는 것 같다. 우리 때는 모든 것이 부족했고 가난을 일찍 알았다. 밥을 먹기 위해서는 열심히 땀을 흘려야 한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 그렇게 부모님은 우리에게 몸으로 보여줬다. 내가 성실한 것도 그런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유산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도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나 정작 우리 아이들한테 우리는 무엇을 보여주고 있을까. 얼마 전 평소에 친하던 세 가족이 만났다. 나이는 모두 다르고 직업도 다르지만 마음이 맞아 가끔 만나는 가족이다. 어찌보면 가족보다 더 친한 가족들이다. 아무 스스럼이 없고 가족보다 자주 만나니 진짜 가족인 셈이다. 제일 아래 친구가 몇 년 전 늦동이 아들을 얻었는데 그것도 처음으로 우리 가족여행 중 태어났고 그 곳 지명인 코타카니바루에서 얻었다 하여 이름이 바루이다. 이제는 커서 만나면 바루 녀석 재롱에 웃음이 떠날 일이 없다. 덕분에 난 졸지에 할아부지가 되었다. 그래도 즐거운 것은 바루 녀석 재롱 때문일 것이다. 그 위 누나가 이제 중학교에 들어가는데 얼마 전 집에 돈이 없다고 하니까 카드 가져가 돈 꺼내오면 되지 않느냐고 천연적스럽게 물었다고 한다. 그냥 농담처럼 듣고 웃었지만 생각해보면 기막힐 일이다. 우리가 이렇게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이 세대들은 그렇게 세상이 심각하지 않다. 돈이 없으면 카드에서 빼면 된다. 카드를 쓰기 위해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모른다. 노동의 가치가 무엇인지 모른다. 행복이란 것이 그리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오는 것처럼 생각한다. 오래전 여동생이 진 카드 빗 때문에 박사과정 진학을 포기한 학생이 기억난다. 아마 같은 맥락일 것이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우리 모두의 숙제이기도 하지만 답은 그리 어려운 곳에 있는 것 같지 않다. 아이들에게 땀의 가치를 가르치면 되지 않을까. 무엇이든 노력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것. 용돈도 그냥 주지 않고 땀을 흘려 일할 때만 받을 수 있다는 것.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다는 것. 남편 직장 보내고 자기 하고 싶은 것 다 즐기면서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학원 보내면 아이들이 과연 따를까. 부모의 한풀이로 아이를 공부 지옥으로 몰지 말고 우리가 열심히 사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정답이 아닐까. 우리의 부모님 따돌리며 무시하면서 아이들이 우리에게 노후에 잘해주기는 기대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보여주는 교육… 왜 우리들은 내가 부모에게 대한 만큼 나중에 아이들한테 돌려받는다는 것을 잊고 있을까. 언젠가 아들이 어릴 때 자기는 아빠가 할머니에게 한만큼 할 것이라고 농담 삼아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전화 한번이라도 덜하면 아이들도 그렇게 배울 것이다. 내가 한번이라도 부모 덜 찾아가면 아들도 나중에 나한테 그만큼 오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밖에 나가 사는데 주말이면 오기를 바라는 내 마음을 보며, 왜 나는 고향에 계신 노모도 그런 생각을 하신다고 생각하지 못할까. 따지고 보면 내 부모님이 정말 내 가족이고 내 가족의 핵인데 왜 가족이 내 자식만일까.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첫 월급을 받아 난 부모님이 아닌 할아버지 할머니 내복을 샀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교육을 받았다….
얼마 전 베트남에 가 학생면담을 했었다. 좋은 학생의 기준은 확실치 않지만 좋은 심성을 가지지 않는 한 아무리 똑똑해도 사상 누각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내일이 세상의 마지막이라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 중의 하나는 시골에 가서 부모님과 함께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도 해 봤다. 내게도 같은 대답이었다. 나를 있게 해준 그리고 지금은 가장 힘없는 시골의 노모한테 제일 먼저 달려갈 것이다. 그렇게 노모의 손을 잡고 마지막 날을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