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앞 맛집 - 낫것상 <2011.12.18 19:16:19 >
- Writer이영희
- RegDate2013-04-10
- Hit17307
- a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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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1.12.18 19:16:19
어렸을 때는 엄마가 해주는 음식 맛에 길들여 있다가 밖에 나가 살면서 정신없이 살다보니 음식 맛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나이 들면서 맛있는 음식점을 찾게 되고 그러다보니 이제는 본의 아니게 자타가 인정하는 미식가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맛의 기준은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주관적이다. 아마도 어렸을 적 맛있는 맛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실험실 경상도 출신을 붙잡고 맛없다 농담하는 것도 아마도 내가 태어나 곳이 전라도이기 때문에 전라도 음식 맛에 익숙한 탓도 있을 것이다.
음식은 문화중의 중요한 요소이다.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를 이해해야 하고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 음식을 이해하지 않는 한 힘든 일이다. 유럽에 가서 각종 치즈 맛을 모르면 식탁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반으로 줄고 치즈 이름을 모르면 대화의 내용도 제한된다. 한국에서 김치 맛을 모르면 한국 음식을 즐길 수 없고 그 많은 음식관련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 또 먹는 즐거움은 인간이 갖고 있는 기본 욕구중의 하나이다. 얼마전 외국 출장으로 2주간 외국에 있다가 왔다. 물론 외국에 있을 때 한국 음식점을 들른 적이 있지만 그 맛이 우리 김장김치에 비할 바 아니다. 이번주는 김치가 밥상의 주인이었고 늘 늦게 집에 가던 나도 김장김치 먹고 싶어 일찍 집에 간 적도 있었다.
나의 생활의 중심이 학교이다 보니 아침에 나오면 저녁까지 외식이다. 학교식당은 에버푸드가 들어와 더 이상 개성을 느낄 수 없어서 다니질 않는다. 그러다보니 식사 시간때마다 학교 앞 음식점 어디를 갈까 늘 고민이다.
학교 앞 식당 중에 낫것상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메뉴는 고작 칼국수와 만두뿐이다. 워낙은 칼국수만 있었지만 얼마 전 서비스 품목으로 추가된 메뉴다. 낫것상은 임금님의 점심을 지칭하는 말이니 간단한 칼국수 메뉴가 낫것상이라는 이름과 잘 어울린다. 원래 이 집은 십여년전 내가 여기 올때 이전부터 있었으니 역사는 그 이전이다. 그 당시에는 우리 실험실에서 그룹미팅 후 점심을 먹으로 가면 15명이 들어가기에는 버거운 비좁은 곳이었다. 지금은 널찍한 곳에 자리잡고 있고 작지만 정갈하고 차 몇 대 주차도 가능한 공간도 있다. 장소도 넓어 30명이 넘은 대 식구도 들어가고도 남는 곳이다. 그러니 정말 대 발전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가마솥에 오랫동안 끓여 나오는 국물이 일품이다. 한때의 열풍이었던 광우병에도 굴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 국물에만 의존하는 칼국수 메뉴를 포기하지 않았다. 국수의 양도 학교 앞 식당답게 장난이 아니다. 전에는 이 양이 부담이 없었지만 나이든 지금은 양이 부담이다. 그러나 학생들에게는 여전히 부족한(?) 양이다. 거기에 만두가 서비스로 나오니 양으로 치면 대박이다. 그 국물 맛은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이 없다. 그 감치는 맛은 옛날 어머니가 해 주던 국물 맛이다. 조미료 맛이 아닌 뼈 국물 맛... 뭐라고 표현할까. 마늘이 들어간 시원한 맛, 시골의 친근한 맛, 뼈 국물이면서도 단백한 맛, 어머니의 정성이 들어간 맛... 도시의 정제된 맛이라기보다는 가까운 친구들과의 수다, 김장할 때의 푸짐함의 느낌들이 뭇어나는 맛... 그런 것들의 조합이다.
그러나 정작 칼국수의 맛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낫것상에 늘 나오는 생배추김치가 없으면 낫것상이 아니다. 사각사각 마늘맛이 넘치는 생김치, 진한 양념 김치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전혀 거부감이 없는 김치다. 실험실 식구들이 가면 김치가 동이 날까 걱정하면 먹지만 한번도 동이 난 적이 없다. 그 어려운 김치 파동때도 김치가 끊어지질 않았다. 가격도 올리지 않고.. 지금도 가격이 6000원인가... 외국에 갔다오면 가보고 싶은 이유는 아마도 김치에 있을 것이다. 서비스로 나오는 만두 맛은 또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다. 실험실의 모든 사람들의 사랑의 대상이 또한 만두이다. 특히 중국에서 온 만두 전문가 학생들도 이 맛에는 혀를 내두른다.
내가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들이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 변하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성대 앞에서 수없이 없어지고 생기는 음식점들, 그리고 처음에 잘하다가 잘되면 나중에 음식맛이 변화는 그런 음식점에 비하면 정말 대조되는 곳이다. 이 비결은 사장님한테 있다. 이 곳 사장님은 정말 한결같은 분이다. 나이가 40십 중반쯤 되는 여자주인인데 언제나 웃는 얼굴이다. 늙지도 않으시는 것 같다. 늘 주방에서 국물을 손수 준비하신다. 변하지 않는 국물 맛, 김치맛이 모두 이 분한테서 나온다. 성당에 나가신다고 늘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일요일은 닫는다. 일하시는 분들도 같은 성당 출신이란다. 모두 상냥하고 불평이 없으시다. 장사가 잘되어 성대 앞에서 나가 더 번화한 곳으로 가지 않은 거의 유일한 곳이다. 그러고보면 사장님은 이 율전동을 무척 사랑하시는 분이다. 내가 출장으로 모처럼 찾아가면 안 온다고 눈도 흘기시는 분이다. 어쩌다 피크 시간을 피해가면 나중에 쥬스 한잔 내오신다. 바나나와 딸기를 우유에 갈아 만든 쥬스는 또 칼국수와 다른 사랑이 느껴지는 메뉴다. 나는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국수를 싫어하지 않는 한 이 곳을 소개한다. 미국, 유럽, 중국, 일본, 어느 하나 예외없이 모두 이 맛을 즐겨한다. 그러니 이 맛은 상당히 객관성이 있는 맛(?)이다. 나만의 맛이 아닌 것이다. 성대 앞의 작은 시장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고 이 자리를 지켜주시는 주인아주머니가 그냥 고맙다. 그 동안 떠난 그 많은 식당들에 비하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낫것상 사장님 파이팅!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