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explore new physics phenomena of low dimensional materials
with a special emphasis on two-dimensional layered structures
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11.06.09 21:20:12
6월초인데 벌써 장마가 시작이란다. 지루한 우울함에서 어떻게 이겨낼까. 요즈음은 이상하게 자주 피곤을 느낀다. 일이 많은 것이야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지만 일에 더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일까. 골프를 시작해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이 더 많아졌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든 탓일 것이다. 정말 끝없는 싸움이다.... 5월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외국에 출장을 가지 않아도 정신없이 시간이 가니 신기하기만 하다. 그렇게 빨리 세월이 가도 오월은 잔인한 달이다. 5/8 어버이날이면 부모님께 잘하지 못한 죄송한 마음이 가득하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득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렇게 며칠이 가 스승의 날이 되면 마음이 더욱 쓰리다. 30이 넘어 교수가 되어 지금까지 왔으니 벌써 많이 세월을 교수라는 직업으로 살았다. 처음에는 교수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먼저 태어난 의미가 있는 선생이라고 부르라고 했지만 스승의 날이 되면 꽃을 달아주고 선물을 받는 것이 머쓱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올해처럼 학생들하고 부딪치고 마음 고생이 심하면 스승의 날에 그냥 도망가고 싶다. 내가 스승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을 내가 아는데 꽃을 달아주는 학생들의 마음을 편히 받기가 어렵다. 실험실에 학생이 많으니 부딪칠 일도 많지만 학생들의 태도가 전과 같지 않아 나 스스로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눈 높이를 낮추어 그들의 시각에서 이해해야겠지만 가끔은 너무 짜증이 난다. 이것도 늙은 탓일까... 너무 쉽게 실망하고 너무 쉽게 무너진다. 내가 너무 많이 요구하는 것일까... 스스로 인간적으로 완벽해지기보다는 그저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는 선배로서, 먼저 배운 사람으로서, 조금 더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는데 스승이라 불리우는 것이 내 스스로도 가당치 않다. 그러기에는 난 허물이 너무 많은 사람이다. 스승보다는 친구로서 혹은 선배로 남기를 원하는데 학생들은 더 이상 나를 그런 사람으로 놔두지 않는다. 그래서 너무 불편하다. 스승의 날이면 차라리 실험실에 오지 않는 것이 더 편하다. 살면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어느새 스승의 날 꽃 받는 것이 익숙해지고 사들고 오는 선물에도 둔감해진다. 어느새부터인가 실험실에서 돈을 걷어 선물을 준비한다. 나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 것 같다. 내기 싣는 구두이며 시계이며 허리띠하며 모두 학생들이 사준 것 같다. 학생들은 스스로 살기에도 힘든만큼 돈을 많이 주지도 않는데 그 돈에서 그렇게 조금씩(?) 각출해서 가진 자(?)인 나에게 선물을 사 주는데 난 아무렇지 않게 받는다.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존경하지도 않는 스승이라도 그저 해야하는 당위성 때문에 돈을 내야하고 스승의 노래도 불러야 한다. 힘들어하는 학생들의 어두운 표정에서 그런 것들을 읽을 때면 내 마음은 두엄자리다. 그런 잔인한 오월이 지나고 6월이 오자마자 무더위에다 또 장마가 시작된다. 이 지루한 싸움에서 이겨야하는 것이 또 인생이다. 포기하려는 마음을 추스르고 내년 스승의 날에는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은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