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explore new physics phenomena of low dimensional materials
with a special emphasis on two-dimensional layered structures
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9.03.09 09:19:05
파리에서 3일째 어제는 처음으로 7시까지 잤다. 아마도 어제 피곤한 하루였을까. 아님 이제 시차적응이 되어가는 것인지... 파리는 모든 것이 눈에 익다. 거리도 건물도 사람도 분위기도... 아마 작년 여름에 여기서 지낸 탓이리라. 발표도 끝나고 cern에 가는 것도 통화가 되어 부담이 없어졌다. 유럽에 온 이후 처음으로 해가 보인다. 온몸에 해가 들어온다. 차가운 바람 중에도 벌써 봄이 느껴진다. 여행을 하면서 온 몸으로 느끼는 것은 불안함이 아닌 외로움이다. 살면서도 피할 수 없는 느낌이지만 여행하면서 특히나 내가 갖고 있는 외로움의 정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평소에 무서운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생각해보니 외로움이라는 놈이 제일 무서운 놈이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 놈이 늘 살고 있어 많은 사람들을 괴롭힌다. 그래서 그 외로움을 피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며 산다. 그래서 친구를 만나고, 파티하고, 결혼도 하고,,,, 과연 피할 수 있을까?
이 느낌은 내가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 있어 마음을 터놓고 지낸다 하더라도 결코 채울 수 없는 부분이다. 죽을 때 아무도 나와 같이 가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오죽하면 고대 이집트 왕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을 같이 생매장했을까. 그렇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들의 행동이다. 물론 어느 정도는 서로에게 위안을 받는다. 외로움도 좋은 친구를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좋은 반려자를 만나면 어느 정도 위로받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의 모든 것을 위로 받으려고 하면 일이 하나둘씩 비뚤어지기 시작한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해도 자기 마음에서 외로움을 완전히 몰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기가 어려운 걸까.
하기야 내 나이 50이 넘어서야 이제 그 사실을 깨달았으니 늦게 깨닫는다 해도 그리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내 마음에서 어떤 경우에도 그 어느 누구에게 의지해도 해결할 수 없는 이 외로움이라는 놈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했을 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는 사실이다. 내가 부딪히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이런 부분을 갖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모두에게 연민이 느껴진다. 그리고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목이 길어서 슬픈 짐승이라고 누군가 시에서 말했는데 그 말이 이해가 갈 것 같다. 우리는 모두 목이 긴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외로움 한 웅큼 갖고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문제는 오히려 이 외로움을 벗어나려고 할 때 생긴다. 서양사람들은 파티를 하면서 이 외로움을 벗어나려 애쓴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벌어 이 외로움을 보상 받으려한다. 어떤 사람은 권력을 가져 그 위세로 사람들이 눌러 그 외로움을 극복하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신을 섬김으로서 그 외로움을 벗어나 구원받으려 한다. 남녀간의 깊은 사랑이 과연 이 외로움을 극복하게 할 수 있을까. 나는 단연코 말할 수 있다. 그 어느 경우도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이 외로움을 짊어지고 가야 할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 결코 벗어 던질 수 없다. 그러나 이 외로움을 그냥 받아들이니 오히려 더 편해지는 것은 외로움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진 짐을 벗어던지기 힘들면 그냥 받아들이고 짊어지고 가라는 말과도 일치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