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explore new physics phenomena of low dimensional materials
with a special emphasis on two-dimensional layered structures
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9.02.24 21:57:50
지난 주는 두통으로 일주일 내내 시달렸다. 전에는 운동을 하거나 땀을 흘리면 투통이 사라지곤 했는데 이제는 뭘 해도 소용이 없다. 일이란 것도 건강해야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고 스스로에 대해 실망하고 낙심했었다. 나이 탓인가... 더 이상 내 몸을 혹사시키면 안 된다는 메시지 같기도 하고 헤이해진 내 마음 탓인지 하고 반성도 해 본 한 주였다. 이제까지 담금질해 온 내 건강의 한계가 여기까지인가 하고 주춤해진 한 주이기도 했다. 내 마음이 꺾인 것인지 내 몸이 따라오지 않는지 다음 주부터의 여행으로 또 나를 돌아보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대망이라는 소설은 일본 춘추 전국시대를 주름잡았던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다혈질인 천재형이고, 히데요시는 떠벌이고 화려한 허풍쟁이인데 반해 이에야스는 인내와 신중의 대명사다. 하긴 살아온 배경이 모두 다르니 그럴 수 밖에 없는 인간형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출신이 좋은 노부나가는 어려서부터 철저한 무사훈련을 받았고 농부출신인 히데요시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신을 과시해야만 했고 이에야스는 무사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인질로 다른 곳에 잡혀가서 살았으니 참지 않으면 살 수 없었고 그래서 신중한 인간형이 되었을 것이다.
모두들 일본의 평화를 위한 통일에 힘을 쓰며 사는 것은 공통이었지만 사람을 다루는 방법은 서로 아주 달랐다. 이에야스는 통일을 이루었어도 자신이 자만하지 않도록 다짐하면서 살았다. 뱃속이 기름지면 방심해진다면서 일일 삼찬을 지켰다. 무서운 사람이다. 맛있는 음식을 즐기려 하는 내가 부끄럽다. 가난했던 내가 언제 이런 것을 즐기기 시작했을까... 가신을 다루는 방법도 아주 특이하다. 히데요시는 전쟁을 해서 승리를 얻을 경우 항상 부하들에게 잔치를 배풀고 논공행상에 따라 전쟁 시 공을 많이 세운 가신에게는 더 많은 땅을 하사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이 화근이 되어 더 이상 나누어질 땅이 없자 한국과 중국을 치기로 마음먹고 그 때문에 마음의 병이 생겨 죽게 되었다. 이러한 히데요시에 비해 이에야스는 상을 주는 데에 철저히 인색하다. 백만석 이상의 가신이 많았던 히데요시에 비해 이에야스의 가신은 십만석을 넘는 자가 거의 없다. 히데요시 죽음 이후 미쓰나리의 반란으로 전쟁을 끝낸 후에도 히데요시의 가신이었던 사람들은 백만석을 준 반면 그의 가신들은 모두 십만석 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야스 가신의 충성심은 히데요시도 부러워할만큼 강했다. 인간의 가치가 반드시 돈 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역사의 단면이라 하겠다. 오늘날 모든 것을 돈 만으로 가치척도를 삼는 우리들에게 그런 것들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렇게 적은 녹봉을 주면서도 이에야스는 철저히 가신들을 몰아세웠다.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늘 질책하고 교육시켰다. 가신들은 그에게 잘했다는 말을 듣기가 아주 어려웠다. 하지만 가신들 모두 이에야스의 일본 경영 철학을 이해하고 모두 같이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다. 가신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으면 단 일 대도 가지 못한다는 교훈을 히데요시로부터 배웠다. 그래서 자식 교육에는 정말 비 인간적일 만큼 몰아세웠다. 제대로 자격이 없으면 후계자로 삼지 않았다. 그래서 장자의 원칙도 없었다. 노부나가로부터 자식을 처벌해야 한다고 압력을 받았을 때 장자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되지 못한 자식을 감싸려 하지 않았다. 일본 통일의 원칙을 내세워 자식을 죽게 내버려 두었다. 그 때문에 무척 힘들어 했지만 그것을 인내해야만 했던 그는 다음 자식들을 철저히 교육시켰다. 그 결과 이에야스 집안의 통치는 그의 경영 철학이 계승되어 수 대에 이를 수 있었다. 자식을 안아주고 싶어도 버릇이 나빠진다고 스스로 주저할만큼 철저한 담금질을 한 것이다. 당시의 어지러운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철저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실험실에서 학생들을 교육시켜야 하는 나로서는 이런 부분들이 그냥 지나가질 않는다.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제대로 잘 교육을 시키는지.. 담금질이 제대로 되지 않은 칼은 만들기 쉬울지 몰라도 쉽게 무디어 진다. 험한 세상에 나가면 금방 넘어진다. 교육에 정도가 없다지만 학생들의 창의성을 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잘못하면 호되게 꾸짖기도 하지만 쉬이 실망하는 학생들의 표정을 보면 가슴이 아파진다. 왜 열심히 연구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연구해야 하는지, 혹시 동기 부여는 부족하지 않은지... 또 한편으로는 정말 이런 것이 부족하다면 과감히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도록 종용하는 것이 더 행복한 길이 아닌지...
푸 이런 일을 하기에 난 아직도 지쳐있지 않은지 반성해 보는 한 주인 것 같다.... 공자는 그랬다. 사람이 아프면 공부를 쉬어도 되냐고 제자가 물었을 때 사람이 아프면 밥 안 먹냐고 되물었다. 내가 머리 아프다고 여기서 멈출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렇게 살다가 가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늘 외로움을 이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