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explore new physics phenomena of low dimensional materials
with a special emphasis on two-dimensional layered structures
http://nanotube.skku.ac.kr/weekly.html 에서 옮김
2009.02.02 10:15:50
과학자하면 우리 머리 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일까?
내 어렸을 적 과학자는 아마 에디슨이었던 같다. 에디슨은 지금 생각하면 과학하는 사람이 아니고 발명가였지만 그 당시 내 머릿속에는 병아리를 만들기 위해 달걀을 품고 있는 그 태도가 무척 신선했었다. 조금 커서는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존재를 알아냈다는 뉴톤이 머리 속에 남는다. 그는 귀족으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천재의 소리를 듣고 자라났다. 또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아 괴짜의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천재였다. 그 다음 더 커서는 아인시타인에 관한 책을 읽었다. 대학 때에 배운 상대론, 시간에 관한 여행들에 관한 생각들이 우리로 하여금 천재라는 인상을 버릴 수 없었다. 따라서 과학자하면 그저 천재가 연상되고 그런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어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괴짜라는 별명을 주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과학자들에게 무언가 보통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부각시키려하는 경향을 갖고 잇는 것 같다.
몇 년전 텔레비전에서 아이들 프로그램에 소개한다고 하여 나에 관한 프로그램을 제작한 적이 있었다. 제작자는 어찌되었던 다른 사람과 다른 면을 찾아내려고 애를 썼다. 공부를 열심히 했다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직장에 다니면서도 열심히 꿈을 끼웠다는 등의 미사여구를 쓰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런 식의 미화는 아이들에게 어필하기는 커녕 저 사람은 나와는 다른 천재 부류이거나 혹은 나는 그런 어려운 환경에 있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에 나하고 관계없는 사람이라고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제작자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살다보니 나도 어느새 과학자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내가 소위 말하는 괴짜 혹은 또라이일까... 모르겠다. 남들은 나를 그렇게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학자로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늘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보다 잘할 수 없으니까...) 또 내가 좋아하는 많은 것도 모두 절제해오며 살았다. 바둑도 대학 때 이후 거의 두어보지 않았고, 골프도 시간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하지 않는다. 친구 만나는 것도 시간이 없어 줄이게 되고 친척 만나는 것도 모두 줄였다. 집에서 장남인 나는 그런 일을 포기하니 때로 식구들에게 욕을 먹기 일쑤였지만 나한테는 그렇게 많은 선택권이 없었다. 상당히 많은 것을 포기해도 내가 하고 있는 연구분야에서 잘하기가 어렵다. 남보다 조금씩 잘하기가 그리 어려운 것이다. 아마 내가 남보다 뛰어나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결과는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괴짜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볼 때 모든 과학자들의 삶도 다른 사람들과 별로 다를 게 없다. 선입관을 벗고 보면 아인시타인도 보통 사람이다. 학교 다닐 때 발달이 늦어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 때문에 고생한 사람이다. 결혼도 실패하여 말년이 그리 편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과학자가 원자폭탄을 만들어 사람을 죽인다고 말년에는 평화운동에 열심이었던 사람이다. 그 당시 하이젠버그가 내놓은 불확정성 원리를 신의 결정론적인 관점과 다르다고 그의 원리를 평생 반대했고 하이젠버그 원리를 기초로 한 현대물리학의 양자역학을 죽을 때까지 받아들이지 못했던 완고한 과학자이다. 오늘날 그가 태어났더라면 그가 어떻게 현대과학을 이해할지 궁금하다. 내가 볼 때는 보통과학자들이 할 수 있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다만 집중해야 할 때 집중할 수 있었던 사람인 것이다. 죽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기가 추구하고자 한 것을 추구하고 산 사람인 것이다.
과학자들은 늘 새로운 생각을 찾아내려고 한다. 연구가 영어로 research 즉 re + search 인것을 보면 결국 늘 다시 찾아내는 것이 연구인 것이다. 남들이 모두 받아들이는 진리를 아니라고 부정하고 더 새로운 것이 있다고 주장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의 생각의 범위는 내가 소속되어 있는 사회와 그 사회가 갖고 있는 규범이라는 것에 늘 지배를 받는다. 사회는 나에게 늘 그렇게 일반화를 강요하고 거기에서 벗어나 생각하면 나는 또라이가 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과학자들에게 쥐약이다. 생각이라는 것도 평소 자기가 자기 두뇌를 어떻게 훈련하는데 달려있다. 사회생활을 평범히 잘하는 사람은 아마 좋은 과학자가 되기 힘들 것이다. 소위 말해서 범생이는 과학자가 되기 힘들다. 자기가 처한 상황 밖을 인식하려고 노력하고 그 규범을 깰 때 새로운 생각이 나온다. 나도 평소에 늘 내가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는 훈련을 한다.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여 최고에 이르지 않으면 그 이상의 세계가 보이지 않는다.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책을 보면 에벌레가 죽을 힘으로 싸워 탑을 올라가고 나서야 비로소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고 자기도 나비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그래서 내 몸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 내 마음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 내가 갖고 있는 규범의 저 너머를 보려는 노력, 이런 것들이 과학자가 가져야 하는 기본 자세일 것이다. 지식의 새로운 세계를 찾아 떠나는 탐험가인 것이다. 결국 과학자는 또라이가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해 내가 갖고 있는 한계에 부딪쳐야 그 이상을 넘어설 수 있다. 적어도 내 몸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내 머리와 몸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고 믿고 열심히 도전하련다. 오늘도 내일도... 그것이 나의 길이니까.. 남들이 뭐라하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