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반도체 포스트 실리콘 시대 … 꿈의 소자 ‘솔리톤’이 연다
반도체 포스트 실리콘 시대 … 꿈의 소자 '솔리톤'이 연다
[한국을 바꿀 10개의 질문]

지난 70년간 반도체 산업은 '더 작게, 더 많이'라는 무어의 법칙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달려왔다. 선폭을 좁혀 집적도를 높이는 '스케일링 다운'은 전자 기기의 혁명을 이끌었지만, 이제 인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물리적 경계선에 도달했다.
선폭이 1.5㎚(나노미터)로 접어들면서, '실리콘(Si)'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얇아진 실리콘 채널에서는 전자가 제어를 벗어나 벽을 뚫고 지나가는 '양자 터널링' 현상이 발생하고, 이는 감당할 수 없는 발열과 에너지 소모로 이어진다.
업계에 던져진 숙제는 명확하다. '포스트 실리콘' 시대를 여는 것이다. 매일경제는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의 '그랜드 퀘스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염한웅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와 최성율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에게 포스트 실리콘 시대를 열 유망군에는 무엇이 있고, 현재 기술 수준은 어떤지 들어봤다.

반도체 미세공정이 옹스트롬 단위까지 논의되고 있다. 실리콘 기반 기술이 직면한 위기는 무엇인가.
최성율 교수=반도체 미세공정의 한계를 단순히 경제적 비용의 문제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본질은 정보를 구분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물리적 크기에 있다. 현재의 CMOS(상보성 금속·산화물·반도체) 트랜지스터 구조에서 '0'과 '1'이라는 신호를 상온에서 안정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크기는 약 1.5㎚다. 이 선을 넘어서면 전자가 흐르지 않아야 할 때도 흐르는 누설 전류를 막을 물리학적 방도가 없다. 실리콘 소자로는 더 이상 성능 향상을 꾀하기 어려운 종착역에 다다른 셈이다.
염한웅 교수=물리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실리콘은 매우 탁월한 소자이나 극단적인 미세화 앞에서는 본연의 성질이 변하게 된다. 이른바 '양자 효과'가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전기적 제어 방식이 무력화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물고기 지느러미 모양의 3차원 '핀펫(FinFET)'이나 동작 전압을 낮출 수 있는 '게이트 올 어라운드(GAA)' 같은 구조적 혁신으로 이를 극복해 왔으나, 1㎚ 벽 앞에서는 구조를 넘어선 소자의 대전환이 필수적이다. 이것이 우리가 포스트 실리콘 소자 개발을 인류의 원대한 도전인 '그랜드 퀘스트'라 부르는 이유다.
-실리콘 기반 기술이 1.5㎚라는 물리적 종착역에 다다르고 있다. 단중기적으로 이 기한을 연장할 소자에는 무엇이 있는가.
최 교수=현재의 실리콘 기반 CMOS 기술은 3㎚ 공정을 넘어 계속해서 다운사이징되고 있지만, 결국 1.5㎚ 근방에서 물리적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단중기적으로는 실리콘을 부분적으로 개량하거나 대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여기서 전이금속 디칼코게나이드(TMD)와 같은 2차원 반도체 물질이 핵심이다. 2차원 소자는 원자 한 층 두께에서도 결정 구조가 안정적이며, 실리콘보다 전하 통제 능력이 월등히 뛰어나다. 기존 실리콘이 얇아지면 성질을 잃고 누설 전류가 발생하는 문제를 소자의 '차원'을 바꿔 해결함으로써 현재의 미세화 추세를 연장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결국 1.5㎚ 한계를 넘어선 이후에는 '컴퓨팅 아키텍처' 자체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폰 노이만 구조의 한계와 그 대안은 무엇인가.
최 교수=미세화가 한계에 달하면 단순히 트랜지스터 크기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초저전력·초고성능 컴퓨팅을 구현할 수 없다. 연산과 기억장치가 분리된 현재의 '폰 노이만 아키텍처'는 데이터 이동 과정에서 막대한 전력을 소모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뇌의 작동 원리를 모방한 뉴로모픽 컴퓨팅이다.
염 교수=뉴로모픽과 같은 새로운 아키텍처를 지원하려면 기존의 전계효과 트랜지스터(FET)를 넘어서는 소자가 필수적이다. 전류의 흐름을 기억하는 '멤리스터'나 전자의 결합 상태를 이용하는 '엑시톤 소자' 등이 그 후보군이다. 이들은 다진법 연산과 같은 다중 정보 처리를 극히 적은 전력으로 수행할 수 있어, 아키텍처 혁명을 하드웨어적으로 뒷받침할 핵심 기술이다.
-가장 파격적인 대안으로 꼽히는 '솔리톤' 소자란 무엇이며 어떤 혁신을 가져오는가.
염 교수=정보 전달의 메커니즘 자체를 바꾸는 혁명적 시도다. 기존 방식은 전하를 직접 이동시키기에 반드시 저항과 열이 발생한다. 반면 솔리톤은 물질 내부의 '위상학적 구조'가 파도처럼 움직이며 정보를 전달한다. 정보 입자가 형태를 유지하며 이동하기 때문에 에너지 손실이 이론적으로 '제로(0)'에 수렴한다. 특히 솔리톤은 '0'과 '1'의 이진법을 넘어 다양한 위상 상태를 가질 수 있어, 한 번에 여러 정보를 처리하는 '다진법 연산'이 가능하다. 이는 컴퓨팅의 밀도와 전력 효율을 차원이 다르게 도약시킬 기술이다.
최 교수=솔리톤과 같은 위상 입자 활용 기술은 기존의 FET 패러다임을 완전히 벗어난다. 소자 하나가 뇌의 시냅스처럼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2차원 소자로 미세화 한계를 돌파하고, 멤리스터와 솔리톤으로 에너지와 연산 효율의 한계를 돌파하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