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explore new physics phenomena of low dimensional materials
with a special emphasis on two-dimensional layered structures
우리 사회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다툼하는 것이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인류문명이 시작되면서일까? 처음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했을거다. 그 때는 덩치 큰 동물을 잡는데 리더가 지시하는데로 움직였을 것이다. 리더가 잘못하면 오히려 다치거나 먹혔을테지만 실패가 반복되면 리더는 여지없이 다른 사람이 대신했을 것이다. 살기위한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보수나 진보로 나뉘어 싸우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민주주의가 현대사회에 정착하면서 생겨난 징조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이런 갈림길에서 갈등하며 살고 있다. 그 갈등은 요즈음 극에 다다르고 있다.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그 시시비비를 가리는 과정에서 사회의 갈등을 부추기는 세력들에 의해 다시 이런 분열이 극대화되고 있다. 개개인의 가치와 삶은 진보와 보수의 가치가 같이 공존하면서 접점을 찾아가지만, 사회의 움직이는 양태는 집단의 이기심이 개입되면서 진보와 보수는 불필요하게 나뉘고 갈증이 조장된다.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갈등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고 이분법으로 분리할 수 없다. 자기 안에서 소화시킬 일이다. 사회도 그런 양태이겠지만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은 우런 우리의 약점을 파고 들어, 양 집단의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고, 이를 통해 이득을 보려고 한다. 대게 옳지 않은 집단이 이런 이분법을 강조하여 옳고 그름을 희석시킨다. 그래서 그들이 살 수 있는 근거를 찾는다. 이 이득보는 집단이 얻는 이익의 형태를 보면 누가 옳은지 금방 알 수 있다. 기생충과 같은 존재들이다. 무지한 대중은 이런 선동에 쉽게 넘어간다. 그리고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한다. 이런 사실들이 우리를 때론 절망에 빠트린다.
전체 집단의 선을 이루는 것은 아예 예초에 불가능한 것일까? 그렇게 때문에 다수의 선을 위한 차선책이 필요하고 민주주의가 생겨났는지 모른다. 난 민주주의 신봉자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선을 선택하지만 비효율적이다. 그렇다고 공산주의는 더 더욱 아니다. 권력을 잡은 자가 다수를 희생시키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본주의도 마찬가지이다. 부자는 더욱 부자되고 가난한자는 더욱 가난해지는 결과는 마찬가지다. 이보다 더 나은 체제는 존재하기나 할까.
탄핵의 정국이 무척 걱정된다. 잘못된 것을 고치고 가자는 것이 진보일 것이고 북한과 대치하고 있으니 잘못된 것이 있더라도 덥고 안정하게 가자는 것이 보수일 것이다. 둘 다 맞는 말일 것 같지만 덥고 가면 과연 일이 잘 풀려질까. 예측이 불허한 북한에 더 잘 대응하고 격변하는 국제 정세에 과연 잘 대응하는 능력이 현 정부에 있기나 한 걸까. 한쪽에서는 탄핵에 대비해 선거전이 한창이다. 믿기기 힘든 일들이 청와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안 국민들은 이제 더 이상 우리 정부를 이렇게 놔둘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당사자들은 아니라고 강변하고 진보와 보수로 구분하여 국민을 양분시키고 이진법 논리로 몰아간다. 진실은 외면한채로 말이다. 이 모두가 그 아버지에게서 배운 수단임을 우리세대는 모두 안다. 그런데도 우리 세대 중 일부는 그 논리에 넘어가 집회에 나와 태극기를 든다. 태극기를 대하던 어렸을 적 우리의 엄숙함, 신성함은 이제 땅에 떨어졌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이제 조금 후면 탄핵이 결정된다. 이 나라에서 무엇인가 토대를 만들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가치있는 일이라고 믿고 그동안 과학토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외국 동료 연구자들에게 밖에 나와 연구해보라고 권고받은 적도 있지만 그것은 나의 가치관 밖이었다. 이렇게 살아온 나도 사실 혼란스럽다. 이것이 내가 공들여 온 나라인지... 일본이 침략했을 때 대처하는 선조와 정부관료들의 처신을 보고 유성룡과 이순신은 얼마나 절망했을까. 아니 나의 절망감이 그런 정도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니 이것은 나의 사치심일 것이다. 난 그저 연구나 잘하고 있으면 된다. 내 할 일 다하고 있으면 이런 상황도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너무 불안한 이 마음은 무엇일까. 내 다음 세대들에게 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조용히 모든 것을 받아내는 인내? 그 어떤 부조리에도 흔들림없이 연구만 하는 고상한 연구자?
그런 연구자이기 전에 난 내 자식들의 부모이고 그들의 미래를 염려하는 이 사회 일원중 하나다. 이 사회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절망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래 가서 그들이 틀렸다고 외치는 일이다. 우리를 더 이상 분열시키지 말라고. 오늘이 삼일절이니 기미전 일제에 항거해서 태극기를 날리던 그때를 상상하면서 오늘도 가서 외치는거다. 이분법으로 나누지 말라고. 본질을 왜곡하지 말라고. 보수와 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