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explore new physics phenomena of low dimensional materials
with a special emphasis on two-dimensional layered structures
살다보니 그저 연구만 하고 살아온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더 많아졌다. 20대 후반에 미국에 갔으니 대학원을 포함 어느새 30년 이상이 책만 보고 산 세월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어느 누구보다 좋은 연구환경을 갖추고 연구라는 것을 제대로 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소중하지만 때로는 또 나태해지는 나를 보곤 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그저 내버려두면 어디든지 가는 지맘대로다. 고삐 풀린 망아지라고 할까. 변덕쟁이일까. 사랑할 때 그렇게 죽고 못 살아도 시간이 지나 이런 기억들이 희미해지고 헤어지는 것을 보면 도대체 우리 인간이란 대책이 없는 존재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우리 인생인 것이다.
매년 이 맘 때 되면 새로운 학생들이 찾아오고 그들의 다짐을 듣게 된다. 늘 새롭게 들리지만 때로 떠나는 재학생들을 보면서 이 아이들의 말이 얼마나 진실일까, 대학원에 와서 연구하려는 마음이 또 얼마나 절실할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각자의 commitment를 확인해보지만 화장실에 들어올 때와 나올 때 다른 마음처럼 마음은 변한다. 그래서 그렇게 굳은 마음도 생활하면서 힘들고 또 마음의 틈이 생기면 구실을 만들어 피하려 한다. 어느 때 문득 찾아와 실험실 그만두겠다는 학생들을 보며 많은 생각들이 오간다. 생각 같아서는 정신이 번쩍나도록 모두 따귀를 한 대씩 갈겨 보내고 싶지만 그 변화의 주체가 나일수도 있어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한다. 내가 학생들에게 못한 부분도 그 원인일 수 있으니 말이다. 연구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들어올 때는 나름 큰 계획을 세우고 들어왔지만 어느 이유든 그런 마음이 시들어지고 나태해진다. 무너져내리는 스스로를 추스르는 일은 그만큼 어렵다.
이런 저런 학생들과 연구원들을 보며 우리가 연구자로서 진정 추구해야 할 삶 혹은 목표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사람은 저마다 개성이 있다. 저마다 색깔이 있는 것이다. 나만의 색깔, 연구자로서 나만의 색깔이 무엇일까. 이영희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무엇일까. 오랫동안 탄소나노튜브를 연구해왔으니 죽부인을 많이 언급한다. 탄소나노튜브를 연구한 사람들이 많지만 국내에서 나만큼 이 분야 연구를 많이 한 사람이 드물어 그런 인상을 가질 수 있다. 내가 원튼 원하지 않던 어쨌든 나만의 색깔로 비춰진 것일 것이다.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 것이다. 그것 때문에 어쨌든 지금의 나가 형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난 어떤 연구자가 되기를 원할까. 이것은 나한테 또 숙제이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또 다른 나만의 색깔을 내야 나를 드러낼 수 있다. 이것은 개인의 명예심과 다른 문제다. 나의 정체성과 같은 것이다. 내 인생에서 연구가 주를 차지하고 있으니 당연히 연구로부터 나의 색깔이 드러나야 한다. 대학원생이나 연구원들도 아직 젊지만 이런 면을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연구 주제를 선정할 때 나의 색깔을 어떻게 정해야 할까 생각해야 한다. 교수 지원한 사람들 보면 가끔 다양한 연구를 했지만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가 분명하지 않을 때가 있다. 지원자가 100명이 넘는 요즘 추세로 보아 그런 경우 그냥 넘어가버리기 쉽다. 어떤 사람은 한눈에 아 이 사람은 뭘 잘하는 사람이다라고 금방 눈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은 적어도 일차 스크린은 통과한다.
논문을 작성하여 제출할 때 Coverletter 라는 것을 쓰는데 이는 에디터가 간단히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작성하여 에디터 스크린을 통과시키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연구의 목표가 분명히 드러나야하고 무엇을 성취했는지 그리고 그것의 과학적인 성취와 의미가 무엇인지 쉽게 드러나게 써야한다. 이런 것이 명확하지 않으면 에디터조차 통과하기 어렵다. 경쟁이 심해 일어나는 기현상이지만 그것이 주어진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다. 많은 경우 연구의 목표가 처음부터 분명하고 결과가 간명하면 쓰기 쉽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구구절절하다.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나의 연구 색깔이 분명하면 이럴 일이 없다.
내 이력서에 나가 드러나게 연구하는 것. 이것이 나의 연구의 정체성이고 내가 추구해야 할 것들이다. 연구란 것도 자기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